다음은 인터넷 혹은 첨가물 바르게 알리기 교육자료에 나오는 유화제에 대한 설명이다.

“유화제는 기름이나 물처럼 식품에서 혼합될 수 없는 두 종류의 액체가 분리되지 않고 잘 섞이도록 해주는 식품첨가물로 아이스크림에 사용되는 레시틴이 대표적입니다.”

그런데 이 단순한 설명도 실제와는 완전히 다른 엉터리다. 물과 기름을 섞기 위해서 쓰이는 유화제는 거의 없다. 더구나 아이스크림에 사용하는 유화제는 물과 기름을 섞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유화를 깨기 위해 사용하며, 이 과정에서 레시틴은 전혀 효과가 없어서 사용되지도 않는다.

유화는 식품 현상에서 가장 복잡한 현상이다. 전공자도 막상 조금만 깊이 이해하려면 너무나 헷갈리는 분야다. 그런데 유화에 대해 문외한들이 생산한 아주 피상적인 엉터리 정보만이 인터넷에 떠돌고 있다.

▲ 미국 유화제 소비량의 67%는 빵(49%)과 케이크믹스(11%), 쿠키와 크래커(7%)에 사용된다. 압도적으로 빵에 많이 쓰인다.
유화제 시장
미국 유화제 소비량의 67%는 빵(49%)과 케이크믹스(11%), 쿠키와 크래커(7%)에 사용된다. 압도적으로 빵에 많이 쓰인다. 물론 미국의 빵 소비량이 많은 덕분이기도 하지만, 다른 나라에서도 유화제의 가장 많은 양을 사용하는 분야는 빵이다. 그 다음이 마가린과 쇼트닝 용도(14%)이고, 제과에서 6% 가량 사용하고 있으며, 디저트 토핑에 3%, 유제품에는 2% 정도가 사용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유화제를 물과 기름을 섞는 물질이라고 생각하지만, 물과 기름의 혼합이 필요한 음료분야의 시장은 0%이고, 물이라고는 한 방울도 쓰지 않는 마가린과 쇼트닝에 꽤 쓰인다. 레시틴도 아이스크림이 아닌 물을 한 방울도 쓰지 않는 초콜릿에 쓰인다.

왜 빵에 가장 많이 사용될까?
빵의 주인공은 단연 밀가루다. 밀가루는 전분과 단백질이 주성분으로 단백질이 주는 물성과 유화력이 빵의 형태를 만들고 향도 만든다. 반죽은 점도가 높아서 어느 정도 지방이 있어도 분리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왜 여기에 유화제를 쓸까?

빵에 사용되는 유화제는 절반 이상이 모노글리세라이드이다. 모노글리세라이드는 가장 흔한 지방인 트리글리세라이드 즉, 글리세롤에 지방산이 3개(트리) 붙은 상태에서 2개가 떨어져 나가고 1개(모노)만 남은 형태이다. 우리 몸에서도 지방의 분해과정에서 잠깐씩 만들어지는 물질이어서 그런지 모노글리세라이드 자체의 유해 가능성은 언급되지 않으며 실제로도 논의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모노글리세라이드는 유화제라기보다는 그냥 지방에 가까운 기능을 한다.

딱딱한 상태의 밀가루를 가열하면 전분 나선 구조가 느슨해져 수분도 많이 흡수하고 부드러운 조직이 되는데 시간이 지나면 노화가 일어난다. 노화는 전분의 나선구조가 다시 원래대로 수축하는 현상으로 조직이 딱딱해지고 소화도 잘 되지 않는다. 이때 유화제나 지방이 있으면 부풀어진 나선 구조 중간에 지방의 사슬이 끼어들어 전분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는 것(노화)을 지연시킨다. 이렇게 노화현상을 억제할 뿐만 아니라, 전분이나 단백질 구조 사이에 끼어들어 탄력이 생기면서 부드러운 조직을 만드는 역할을 한다.

빵에서 유화제의 용도는 지방(직선형 단일 글리세라이드)의 역할 자체이지 물과 기름을 섞는 기능은 전혀 아니다.

물과 기름을 섞는다는 거짓말
유화제의 모식도는 어느 그림이나 비슷하다. 친수기와 친유기를 모두 가진 유화제가 작은 구형을 이루고 있는 모습이다. 모식도를 보면 그럴듯한 유화물이 만들어질 것 같지만 사실은 전혀 말도 안 되는 그림이다. 유화는 우유처럼 만드는 것이고, 뿌옇게 보이는 지방구는 1~10um 크기의 지방구이다. 지방구의 크기가 2um라고 해도 길이가 0.002um에 불과한 지방이 모식도처럼 지방을 감싼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모식도의 그림은 10nm도 되지 않는 허구의 유화 모식도이다. 보통 100nm 보다 작은 지방구는 빛을 산란시키지 못해 투명해진다. 100nm 가용화도 특별한 유화제와 초고가의 균질기를 필요로 하는데 유화 교과서에 등장하는 유화의 모식도마저 완전히 엉터리인 셈이다.

▲ 유화
2000nm 지방구의 표면 2nm의 부피는 전체 부피의 0.3%에 불과하다. 만약에 물에 10% 유지를 유화시키겠다면 유화제는 유지의 0.3%가 필요하니 0.03% 유화제로 완전히 코팅이 된다는 이야기다. 유화제 사용량이 적은 것은 실제 표면적의 비율이 낮아서 가능한 것이지 유화제에 무슨 특별한 힘이 있어서가 아니다.

식품용 유화제로 물과 기름을 섞을 수 있다면 정말 큰돈을 벌 수 있을지도 모른다. DHA, EPA, 코엔자임Q10, CLA, 토코페롤, 라이코펜 등 수많은 건강기능식품의 소재가 물에 녹지 않기 때문에 음료 등의 제품에 제대로 적용되지 못하고 있다. 단순히 식품용 유화제를 섞어주는 것 만으로 이들 원료의 유화가 가능하다면 수백억 수천억 원의 시장을 모조리 점령할 수 있다.

음료에 활용할 수준의 유화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수많은 연구를 거듭하는 연구자에게 유화제를 넣기만 하면 물과 기름이 섞일 것처럼 말하는 것은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소리밖에 되지 않는다. 흔히 생각하는 물과 기름을 섞은 것은 공업용 계면활성제나 세제의 이야기다. 이것도 쉬운 것은 아니다.

식품용 유화제의 주 용도는 전분의 노화 지연 등 지방의 일종으로서의 기능이다. 유화제가 물과 기름의 계면 현상에 작용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심지어 아이스크림이나 휘핑크림에서는 유화를 빠른 속도로 깨기 위해 유화제를 사용한다. 물과 전혀 관련이 없는 용도가 대부분인데도 유화제라는 이름을 쓰는 것이 오해를 부르기 쉽지만 딱히 마땅한 이름도 없다. 차라리 모노글리세라이드로 표기하는 것이 오히려 모두에게 혼동을 적게 주는 방안일 수도 있겠다.

최낙언 시아스 이사
서울대학교와 대학원에서 식품공학을 전공했으며, 1988년 12월 제과회사에 입사해 기초연구팀과 아이스크림 개발팀에서 근무했다. 2000년부터는 향료회사에서 소재 및 향료의 응용기술에 관해 연구했다. 저서로는 ‘불량지식이 내 몸을 망친다’, ‘당신이 몰랐던 식품의 비밀 33가지’, ‘Flavor, 맛이란 무엇인가?’가 있다.

☞ 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식품저널 foodnews를 만나세요. 구독하기 클릭

저작권자 © 식품저널 foodnews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