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낙언의 GMO 2.0 시대, 논란의 암호를 풀다] 14. 자연에 너무 흔한 GMO 현상

▲ 겐트대학 연구팀의 유전자 분석과 근연종 연구에 따르면, 고구마는 별로 쓸모없는 작물에서 박테리아(아그로박테리움으로 추정)가 외래 유전자를 삽입하는 바람에 재배하기 쉽고, 먹기 좋은 작물이 되었다고 한다. 자연적 진화가 아니라 유전자의 수평적 이동에 의해 새로운 작물로 창조된 것이다.

GMO 기술은 원래 세균과 바이러스의 기술
우리는 주로 부모로부터 유전자를 물려받는다. 인간뿐 아니라 모든 생물이 주로 그런 식으로 유전자를 물려받아 정체성을 유지한다. 그것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수직적 유전자 이동이라고 한다. 그런데 ‘수평적 유전자 이동(Horizontal gene transfer)’도 있다. 유전자를 분석해보면 교잡할 수 없는 생물의 유전자가 엉뚱한 생물에 발현되는 경우가 있는데, 바로 아그로박테리움(Agrobacterium) 같은 세균이나 레트로 바이러스(Retrovirus) 같은 것을 통해 종간의 경계를 넘어서 수평적으로 유전자가 이동된 경우이다.
 
인간의 유전자 기술(GMO 기술)은 바이러스와 세균에서 차용한 자연의 기술 그대로이고, 최근에 개발된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마저 세균에서 발견해 새롭게 배운 기술이다. 오히려 자연에 없는 방식은 접목이나 돌연변이 육종 같은 기존의 육종방식이다. 레트로 바이러스는 다른 숙주세포에 들어가 자신의 유전자를 숙주세포의 유전자 속에 집어넣어 그 유전자의 일부가 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바이러스에 의한 유전자의 이동은 세균뿐 아니라 대부분의 생명에서 일어난다.

천연 GMO ‘고구마’
많은 사람들이 GM 작물은 인간이 처음 만든 기술이고, 오랜 사용 경험이 없기 때문에 위험하다고 하지만 사실이 아니다. 그 구체적인 예가 고구마이다. 겐트대학 연구팀의 유전자 분석과 근연종 연구에 따르면, 고구마는 별로 쓸모없는 작물에서 박테리아(아그로박테리움으로 추정)가 외래 유전자를 삽입하는 바람에 재배하기 쉽고, 먹기 좋은 작물이 되었다고 한다. 자연적 진화가 아니라 유전자의 수평적 이동에 의해 새로운 작물로 창조된 것이다.

고구마가 천연 GMO란 것을 이제야 안 이유
인간의 GMO는 특정 유전자를 넣었기 때문에 그 유전자의 존재 여부로 GMO 여부를 판단한다. 그런데 자연의 GMO는 어떤 유전자가 추가되었는지 모르기 때문에 검사가 매우 힘들다. 옥수수를 검사한다고 하면 전체 230만 유전자 중에 실제로 발현되는 3만3000종의 유전자를 전부 검사하여 그 중에 옥수수에 한 번도 등장한 적이 없는 유전자가 무엇이 있는지를 검사해야 한다. 예전에는 한 생명체의 전체 유전자를 파악하는 데 몇 년씩 걸렸다. 그래서 고구마가 천연 GMO라는 것을 최근에야 파악 가능했다.

즉, GMO 검사는 생물 전체에 걸쳐서 일어난 유전자 변형 정도의 검사가 아니고, 단지 인간이 인위적으로 추가하는 유전자가 있는지 여부의 검사이다. 옥수수에 수십 개 외부 유전자가 삽입되어도 그것은 전통의 옥수수이고, 인간이 추가한 딱 한 가지 유전자만 있어도 완벽한 GM 작물이라고 겁을 낸다. 사람들은 수만 개의 전체 유전자에 어떤 변이가 있어왔는지는 아무 관심이 없고, 단지 인간이 삽입한 특정 유전자의 존재 여부에만 온통 관심을 쏟고 있다.

자연에 너무 흔한 GMO 현상
인간이 쓰는 GMO 기술은 원래 자연의 기술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천연 GMO는 무작위로 무차별 유전자가 삽입되지만, 인간의 GMO는 인간이 의도한 유전자만을 넣고 목적하는 식물이 만들어질 때까지 실시한다는 차이 정도일 것이다. 따라서 자연의 GMO는 성공 확률도 정말 낮고, 자연선택에서 살아남을 확률도 정말 낮다. 인간의 GMO는 어떤 유전자를 변형할지 제어할 수 있으므로 성공 확률도 높고 더 안전할 수 있다.
 
자연에 무수히 많은 생명에서 수많은 외래 유전자가 발견되니 자연의 GMO는 도대체 얼마만큼 많이 이루어지는 것인지 알기 힘들다. 한 연구에 따르면, 바다 속에 있는 바이러스들이 자신의 유전자를 새로운 숙주로 전이시키는 횟수가 1초에 1000조 회에 달한다고 추정한다. 인간이 모르는 GM 생물이 바다에서만 매초 1000조 회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세월이 수십억 년이 지났다. 인간의 DNA 조작은 이제 고작 수십 년이고 그 횟수도 미미하니 인간이 아무리 열심히 GM 작물을 만들어 본다고 한들 그 오랜 세월 동안 자연이 해오던 GMO 조작의 1초 분량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

인간에게 인간만의 고유 유전자는 거의 없다
인간 유전체를 다른 유기물들과 비교해 보면 우리 유전자의 37%는 박테리아에서 왔고, 28%는 진핵생물에서, 16%는 동물에서, 그리고 13%는 척추동물에서 왔다. 겨우 6%만 우리가 진화해 영장류로 분화할 때 새로 나타난 것이라고 한다.
 
레트로 바이러스는 유전자를 복제할 때 자신의 유전자를 숙주의 유전자 사이에 슬쩍 끼워 넣는다. 그 세포가 숙주의 생식세포인 경우에는 자식의 유전자에도 바이러스 유전자가 고스란히 들어갈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인간의 유전자에 남겨진 부위를 HERV(Human endogenous retrovirus)라고 부르는데, 우리 유전자의 약 8%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의 유전자가 바이러스에 의해 조작되는 것이다.
 
이것은 질환의 원인이 될 수도 있고 진화의 씨앗이 될 수도 있다. 태반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유전자도 이렇게 유입된 것이라고 한다. 우리 인간의 유전자 중 바이러스에서 유래한 것을 모두 제거하면 과연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아닐 것이다. 인간은 부분적으로 바이러스의 후손인 셈이고, 지금 우리가 그렇게 두려워하는 GM 기술은 바이러스가 원조이며, 인간이 자연의 GM 기술을 차용한 것일 뿐이다. 단지 자연은 랜덤하게 사용하고 인간은 목적성 있게 사용할 뿐이다.

생명 진화에서 가장 중요한 원동력
과학자는 최초의 생명이 어떻게 생겼는지에 정말 관심이 많다. 그리고 진핵세포의 탄생 과정도 매우 관심이 많다. 진핵세포만 생기면 다세포과 거대 동물의 탄생은 필연으로 보기 때문이다. 진핵과 원핵세포의 크기는 직경의 차이가 10배 이상이다. 부피로 치면 보통 1만 배이다. 이런 진핵세포의 탄생 배경에 유전자의 대규모 이동이 있었다.

원핵세포 내로 산소를 이용하는 세균이 침입하여 대규모 유전자의 수평적 이동에 의해 미토콘드리아로 변형되면서 비로소 진핵세포의 조건이 갖추어졌다. 이것이야말로 전대미문의 대사건이고, 모든 고등생명의 탄생의 기반을 만든 대도약이다. 그런데 식물은 여기에서 또 한 번의 대도약을 한다. 바로 광합성 세균인 ‘시아노박테리아’가 이 진핵세포로 침입하여 한 차례 대규모 유전자 이동을 하여 ‘엽록소’가 만들어진 것이다.
 
그래서 식물은 동물보다 유전자가 많고 동물이 하지 못하는 온갖 물질의 합성이 가능하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진핵세포가 연합하여 다세포 동물이 된 이후에도 수시로 일어난다. 사실 진화는 DNA의 변화로 이루어지는데 우연한 돌연변이에 의한 진화보다는 다른 생명에서 만들어진 유전자 세트가 세균이나 바이러스를 통해 전달되고, 이것을 이리저리 변형하고 활용해서 이루어지는 유전자 변화가 오히려 진화를 주도했을 가능성이 높다.

   
최낙언
편한식품정보 대표

최낙언 편한식품정보 대표는 서울대학교와 대학원에서 식품공학을 전공했으며, 1988년 12월 제과회사에 입사해 기초연구팀과 아이스크림 개발팀에서 근무했다. 2000년부터는 향료회사에서 소재 및 향료의 응용기술에 관해 연구했다. 저서로는 ‘불량지식이 내 몸을 망친다’, ‘당신이 몰랐던 식품의 비밀 33가지’, ‘Flavor, 맛이란 무엇인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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