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화 명예교수의 살며 생각하며 (2)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식품저널]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울창했던 숲을 이룬 나무들이 봄여름에 무성했던 푸른 잎을 미련 없이 모두 떨어뜨리고 홀가분한 모습으로 자신의 전체 모습을 훤히 보여주고 있다. 떨어진 낙엽을 보면서 여러 형태의 우리 삶을 닮았다는 생각을 한다. 잎이 돋아나는 유년기를 거쳐 한창 젊음의 왕성한 여름을 거친 후, 모은 힘으로 다음을 이어갈 씨앗을 맺도록 하는 것으로 제 역할을 다하고, 다음 세대에게 내 자리를 물려주면서 땅으로 떨어져 다시 자연의 순환에 자기를 맡기는 순리를 따르고 있다. 여름에 태양의 힘을 모아 자기가 태어난 몸체에 모든 것을 주고 나서 제 역할이 끝났을 때를 스스로 알아 자연으로 돌아가는 모습에서 깨끗한 마무리를 본다.

나무들도 종류에 따라서 여러 가지가 있다. 도토리 등 참나무 속의 나무를 보면 가을을 지나 겨울에도 시들은 잎을 아직 붙이고 있다. 나무 스스로 내 자식 같은 잎에 미련이 있는 것인가, 떨어져야 할 잎이 어머니인 몸체에 더 붙어 있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는가, 어느 쪽이든 마지막 마무리하는 모습이 그렇게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오동나무를 보라. 봄에 잎사귀가 늦게 나오기는 하지만 가을, 낙엽 질 때도 어느 나무보다도 먼저 잎을 떨어뜨린다. 그 큰 잎을 떨어뜨릴 때 마지막 뚝 소리를 내면서 여름내 한 살이었던 몸체에 조금의 미련도 두지 않고 깨끗이 이별을 고한다. 마무리가 너무나 깨끗하지 않은가.

인간의 삶에서도 마무리할 때를 가리지 못하여 미련을 두면서 질질 끌어 추한 모습을 보이는 경우를 본다. 특히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이런 현상의 표본이다. 자식이 성장하여 자기 앞가림을 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 부모가 손을 놓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참나무 같이 빛바랜 낙엽을 놓기 아쉬워 붙잡고 있는 것이 초라한 것처럼, 사람의 관계도 비슷하지 않을까 여겨진다. 어느 시기가 되면 모든 미련을 털고 스스로 갈 길을 가도록 놓아주는 것이 가장 바람직스럽다. 떨어진 낙엽은 나무와 관계를 완전히 단절한 것은 아니다. 스스로 분해되어 다시 자기를 만들어 주었던 나무의 거름으로 되돌아와 어미 나무에 돌아간다. 우리 자식들도 독립하여 자기 생활을 하면서 자기를 있게 한 부모를 돌보고 봉양하는 것으로 보은을 한다.

나무와 낙엽에서 자연의 순리를 배우면서 우리 인간 사회에서도 시기에 따라 서로를 놓아주고 혼자서 일어서고 다시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자연의 순환 원리를 따르도록 하는 것이 순리이다. 참나무에 끈질기게 붙어 있던 초라한 잎사귀는 다음 해 새싹이 나올 때야 자기 정신이 들어 손을 놓는다. 자기 스스로보다 다음 세대에 밀려 떨어지는 추한 모습을 보인다. 이 나뭇잎은 아직도 자기가 할 일이 있을듯하지만 아주 오래전에 제 역할은 끝났다는 것을 자기만 모를 일이다.

우리가 끝날 때를 알아 미련 없이 손을 놓는 지혜를 가졌으면 한다. 가을은 왔는데 아직도 봄인 양 착각하여 세상을 잘못 보는 우를 범하지 않았으면 한다. 이는 추한 모습을 보일 뿐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 시기를 알기가 쉽지는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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