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세근
식품안전상생협회 사무총장

손세근 식품안전상생협회 사무총장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란 말은 한서(漢書)의 조충국전(趙充 國傳)〉에 나오는 이야기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황제로부터 변방의 오랑캐 토벌 방안을 지시받은 76세 백전노장인 후장군(後將軍) 조충국은 “백 번 듣는 것이 한 번 보는 것보다 못합니다. 무릇 군사란 작전 지역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는 전술을 헤아리기 어려운 법이므로 바라건대 신을 금성군(金城郡: 지금의 간쑤성 난주 부근)으로 보내 주시면 현지를 살펴본 다음 방책을 아뢰겠습니다[百聞不如一見 兵難險度 臣願馳至金城 圖上方略]”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처럼 백문불여일견은 “한 번 보는 것이 백 번 듣는 것보다 훨씬 좋다”는 뜻이다. 어떤 일을 계획, 집행할 때 현지를 한 번도 답사하지 않고 탁상공론에 매달리면 실패할 확률이 매우 높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고사성어다.

탁상공론(卓上空論)의 명암
필자가 기갑(탱크)부대 소대장으로 군 생활을 막 시작했을 때 일이다. 햇살이 무척이나 뜨겁던 어느 여름날 진지구축 훈련을 갑자기 하게 되었는데, 어쩌다 보니 훈련현장을 사전에 답사하지 못하고 도상으로만 계획을 짜서 훈련에 임하게 되었다.

불안한 예감은 왜 그렇게 빗나가질 않는 것일까? 우려했던 일은 첫날부터 어김없이 벌어지고 말았다. 지도상으로는 분명히 작은 도로가 표시되어 있었지만, 실제 가 보니 전차 1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의 좁은 산길이었고 경사도 매우 심했다. 산등성이까지는 천신만고 끝에 도달했지만, 다시 돌아서 내려 오는 일이 문제였다. 즉, 전차를 되돌릴 만한 공간이 협소해서 자칫하면 전차가 전복될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다.

당시 조종수가 경험 많은 고참 병장이었음에도 수십 차례 전진과 후진을 반복한 끝에야 겨우 유턴해서 내려올 수가 있었고, 작전계획 상의 시간을 맞추지 못한 데 대한 중대장님의 추상같은 꾸지람은 무전기를 통해 쏟아지고 있었다.

결국, 그 날의 훈련은 실패로 끝났고 현지 답사 없이 작전계획을 수립했던 나의 탁상공론이 얼마나 참담한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는 지를 뼈저리게 느낀 사건이었고, 이후 군생활에서는 철저한 사전준비를 습관화하였다.

제대 후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부서 배치 면담을 하게 되었는데, 당시 인사팀장은 나에게 본사 근무를 제안했지만 나는 상기 군 생활에서 기억을 떠올리며 단호하게 생산공장에 근무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배치 받게 된 인천공장은 건립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근무환경이 매우 열악했지만, 여러 차례에 걸친 증설공사를 통해 그 공장은 몇 년 후 회사의 주력공장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고, 필자 역시 성과를 인정받아 본사로 스카우트되어 과장으로 진급하는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

현장경험이 있어야 나중에 본사에 근무하게 되더라도 현장으로부터 탁상공론만 한다는 소리를 듣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스스로 자원해서 얻은 신입사원 시절의 소중한 현장경험은 이후 직장생활에서도 계속해서 아주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 기업에서 가장 바람직한 Career path는 현장부서를 먼저 경험하고 나서 기획이나 관리부서로 옮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장경험은 가장 소중한 자산
생산현장에서 품질 향상, 원가 절감을 통한 생산성 향상을 추진하는 혁신 활동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원칙은 3현주의(三現主義)다. 즉, 모든 개선활동은 현장에서 현물을 보고 현상에 입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비단 생산현장뿐만 아니라 우리가 하는 모든 영역 그리고 일상생활에서도 적용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다. 실제로 경험을 해 본 것과 하지 않은 것의 차이는 실로 엄청나다. 이론상으로는 가능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현장 상황에서는 이론대로 적용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필자가 공장에서 본사로 자리를 옮겨 처음으로 담당했던 업무는 공장 관리 및 혁신 업무였다. 당시 전국 6개 공장의 품질, 원가, 생산성 지표 관리와 생산혁신을 주관하는 일이었는데, 공장 근무 경험이 없었다면 현장에서 올라오는 보고서 내용을 제대로 검증하고 필요한 의견을 내는 등의 기술적 역할을 잘 수행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아마도 뜬구름 잡는 탁상공론식의 업무처리를 할 수 밖에 없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신입사원부터 대리까지 약 6년간 현장경험을 쌓은 것은 지금 생각해 봐도 정말로 신의 한 수였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기업에서 가장 바람직한 Career path는 현장부서를 먼저 경험하고 나서 기획이나 관리부서로 옮기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필자는 기회 있을 때마다 후배들에게 이를 강조하고 있다.

한편, 지난 4월부터 필자는 한국장학재단에서 주관하는 사회의 리더 대학생 멘토링 사업에 참여해서 8명의 대학생 멘티들을 지도하고 있다. 멘토링이란 “경험과 지식이 풍부한 사람이 멘티(mentee: 멘토링을 받는 사람)에게 지도와 조언을 하면서 실력과 잠재력을 개발하는 것”을 말한다. 멘토에게는 그냥 하나의 작은 경험일 수도 있는 것이 멘티에게는 아주 효과적인 길잡이 역할을 해 줄 수 있는 것이 멘토링의 효과라고 본다.

필자가 하는 멘토링의 주제는 ‘진로 탐색과 취업전략’인데, 필자가 기업에서 오랫동안 면접관 역할을 하면서 느꼈던 많은 경험이 대학생들에게 큰 도움이 되리라 믿고 있고, 이를 효과적으로 전달하여 스스로 방향을 수립해 나아가도록 하는 방법론을 열심히 설계하고 있다.

최근 들어 생산현장에 근무하기를 기피하는 현상으로 구인난이 심각하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고 있는데,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기업에서 진정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힘의 원천은 현장에서 몸소 체험했던 경험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혈기왕성한 신입 시절에는 근무환경이 다소 힘들더라도 긴 호흡으로 차근차근 역량과 내공을 쌓아나가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는 점을 젊은 후배들에게 강조하고 싶다.

손세근 식품안전상생협회 사무총장은 평생 현역을 추구하는 AND의 의미로 “N칼럼니스트”란 퍼스널 브랜드를 가지고 있다. CJ제일제당 재직 당시 식품안전과 CS(고객만족) 총괄임원을 역임했으며, 미래변화와 인생다모작 등 새로운 분야에 대한 학습을 통해 칼럼의 소재를 넓히는 등 왕성한 활동을 끊임없이 해 나가고 있다.(개인 블로그: blog.naver.com/steve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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