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저널] 로스팅은 원료에 열을 가해 일련의 화학변화를 통해 최상의 풍미(Flavor)를 구현하는 방법인데, 비단 커피나 곡류제품뿐 아니라, 녹차(Camellia Sinensis)도 강한 불에 볶는 로스팅 공정을 거치면, 한국인의 입맛에 익숙한 구수한 풍미를 가지는 차로 변신하게 된다. 녹차는 글자 그대로 녹색을 띠는 찻잎인데, 강한 불로 로스팅해 갈색을 띄는 녹차는 배전녹차(焙煎綠茶) 또는 일본어로 호지차(焙じちゃ)로 불리고 있다.

1929년 일본에서 대공황의 영향으로 녹차를 판매하는 가게에 팔지 못한 녹차가 산더미처럼 쌓이게 되고, 당시에는 지금처럼 냉장보관이나 포장기술이 없었던 탓에 차를 상자에 넣어 창고에서 보관하는 방법으로 몇 번의 여름을 지내다 보니, 색이 변질되고 이취가 발생하는 등 녹차로 판매하기 어려운 문제가 발생했다.

상품으로 팔 수 없는 오래된 녹차를 가지고 교토대학교 연구소를 찾아가 상품화 방안을 몇 차례 논의했으나, 좋은 대안을 찾지 못해 난감해 하던 한 교수가 습기를 잔뜩 머금은 찻잎을 냄비에 넣어 건조해 보라고 학생에게 지시했고, 그 학생이 그만 연기가 날 때까지 태워버리는 실수를 저질렀다. 탄 찻잎에 뜨거운 물을 부은 그 순간 생각하지도 못한 구수한 향기가 실내를 가득 채웠고, 그것을 계기로 로스팅 녹차가 되었다는 일화도 있으나,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확대가 되고 있는 품목이다.

로스팅 녹차는 로스팅 공정을 거치면서 형성되는 구수한 향기와 떫지 않은 단맛이 특징인데, 그 중에서 구수한 향기의 주요 성분은 2-Ethyl-3,5-dimethylpyrazine으로 알려져 있다 Pyrazine 화합물은 휘발온도가 대체로 낮아서 관능적으로 우선 느끼게 되는 top note에 속하므로 구수한 향기의 특징을 나타낸다. 피라진 성분은 일반적으로 식품 속에 함유되어 있는 당, 아미노산 등의 성분이 가열에 의한 화학변화로 생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식품마다 그 속에 함유되어 있는 성분의 종류와 조성 비율이 다르기 때문에 각각 고유의 특유한 향기가 생기는 것이다.

로스팅 녹차는 강한 열처리로 인해 카페인 함량이 일반 녹차의 1/2 수준으로 줄어드는데, 이는 카페인이 고온의 로스팅에서 일부 승화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로스팅 녹차는 카페인의 함량이 적고, 떫은 맛이 적으며, 구수한 풍미를 가지고 있어서 남녀노소 부담없이 즐길 수 있다.

특히 한국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볶은 보리차나 결명자, 둥굴레, 누룽지 등 대부분 불에 강하게 볶은 음식의 향기에 미각이 형성되어 있는 반면 풋내와 떫은 맛을 내는 녹차는 익숙한 맛이 아니어서 녹차 소비가 저조한 이유도 있다고 보는데, 떫은 맛은 없고 구수한 향기와 부드러운 단맛을 지닌 로스팅 녹차는 보다 한국인에 맞는 녹차라고 할 수 있다.

김종태
㈜티젠 대표이사

일본의 경우 로스팅 녹차 시장규모만 3500억 원이 넘어가고 티백이나 RTD, 아이스크림, 초콜릿, 캔디, 디저트류 등 다양한 식품에 적용되고 있다. 또한 일반 녹차와 달리 찬물에도 잘 우러나 가정이나 사무실, 식당 등 항상 찬물에 익숙한 한국인에 보다 적합한 차제품이 아닌가 생각된다.

김종태 ㈜티젠 대표이사는 차 전문업체 티젠을 경영하며, 한국차중앙협의회장, 한국차학회 부회장, 한국강소기업협회 부회장, 한국차인연합회 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차의 과학과 문화’, '차 이야기', '차의 과학' 등 5권이 있다.

식품저널 2019년 11월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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