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일본과 중국은 발효하지 않으면 ‘간장’으로 못 부르게 한다

소비자 대다수 혼합간장 뒤에 숨어있는 ‘산분해간장’ 인지 못해
신라시대부터 이어온 우리 간장, 일제 강점기에 빼앗겨

이한창
전 동덕여대 연구교수
(식품기술사)

나는 1960년대 한국의 대표적인 간장회사 연구부장으로 일하며 발효간장 품질 개선을 위한 연구생활을 한 이래 근 70여 년 동안 한시도 장류 문제에서 떠나본 일이 없다. 그런 사이에 내 나이가 이제는 졸수를 훌렁 넘겼다. 난 항상 우리 간장에 대한 애정으로 기회가 있을 때 마다 간장 이야기를 하며, 대중에게 전파하고, 우리 간장을 지키는 생산자들을 격려해오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나의 평소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 장에 대한 못다한 숙제가 너무나도 많다. 그 하나는 내가 지금까지 청년들과 같은 건강을 유지하고 있는 비결인 청국장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또 하나는 우리 간장 이야기이다. 그래서 오늘은 지면관계상 간장 이야기, 그 중에서도 산분해간장을 논할까 한다.

원래 장류라함은 미생물 발효로 콩의 단백질을 분해해서 감칠맛이 있고 먹기 좋게 만든 발효식품이다. 그런데 일제 강점기에는 콩깻묵에 염산을 부어 끓이고 거기에 양잿물로 중화하는 방법으로 속성 간장을 만들어 시판했다. 그 당시 전쟁 통에 식량부족에 시달린 나머지, 콩도 없었을 뿐 아니라 발효시간이 장기간 소요되는 발효간장으로는 군수품 등 조달도 어려움이 많았다. 즉 비정상적인 시대에 걸맞게 비정상적인 식품이 간장이라는 이름으로 시장을 점유했다. 이런 제품은 그 맛이나 향이 전통적 발효제품에는 도저히 비교될 수 없는 것이었으며, 위생적으로도 문제가 있었다.

이러한 역사적 유물은 해방 후 우리의 빈곤에 편승해서 우리에게 그대로 전수되었다. 그 이름도 초기에는 정직하게 ‘아미노산 간장’ 또는 ‘산분해간장’이라 했던 것이 발전(?)해서 ‘혼합간장’으로까지 이르러 오늘날까지도 시장점유율 60~70%의 꿋꿋한 생명력을 과시하고 있는 실정이다.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인 오늘날까지 국민에게 화학약품으로 만든 간장을 제공하는 것에 대해서는 생산자들 스스로 깊이 생각해 볼 여지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산분해간장은 염산으로 분해해서 속성으로 만든 간장이기 때문에 그 나름의 표준화된 맛은 있다 하겠으나, 전통적 개념의 간장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기에는 어딘지 불합리한 감이 없지 않은 것이다.

반면, 우리의 장을 보자, 콩 삶을 때부터 구수한 향과 잘 익은 콩을 한 움큼 쥐어 먹던 어린 시절의 추억이 절로 생각나게 한다. 요즈음 시대의 과자처럼 간식으로 먹던 삶은 콩의 맛과 봄 학기를 마치고 여름방학이 되어 오랜만에 고향 집에 들어서면 장이 익어가는 짭조름한 향기가 아직도 고향의 향수로 기억되며 장 담는 날의 상황을 떠오르게 해준다.

또, 미생물학 측면에서 보면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뚜렷하고 지역별로는 기후환경이 크게 다르고, 이런 환경에 따라 장을 담기 위해 만드는 메주에는 지역별 특성에 따라 자연스럽게 다양하고 차별화된 특색이 있는 미생물이 자라서 그 지역의 특색이 있는 메주를 만들어주고 장맛을 만들어 낸다. 이처럼 우리의 발효간장은 스토리를 내포한 감성이 깃든 식품이라 할 수 있다.

염산과 양잿물로 만든 간장을 무엇이라 이야기할 수 있을까 고민해 본다. 유명 장류회사의 홈페이지에 보면 산분해간장에 쓰이는 염산을 ‘식염산’이라 설명했는데 소비자들이 이해할 수 있을지 장류산업계는 심각하게 고민해 볼 때라 생각된다. 원래 산분해간장의 창시자였던 일본도 지금은 양조방법으로 간장을 만들고 있고, 시장에서는 산분해간장은 찾아볼 수가 없는 실정이다.

산분해간장에 대해서 옹호하는 태도를 취했으나
나의 태도가 오늘날에는 180도로 변한  분명 이유는... 

나는 한동안 산분해간장에 대해서 옹호하는 태도를 취했다.

1968년의 풀찌꺼기 사건, 즉 당시 산분해용으로 당연하게 사용되어왔던 밀가루 글루텐이 방직공장에서 풀을 쑤고 남은 풀찌꺼기라며 시비를 걸고 나온 당시 영등포 보건소장의 문제 제기로 한동안 업계가 크게 곤욕을 치른 일이 있었고, 두 번째는 1985년 8월 2일의 한 방송사에서 ‘왜 간장을 화학약품으로 만드느냐’라는 제목으로 보도했다. 그 며칠 후 한 일간지도 ‘간장은 콩으로 만들어야’라는 사설을 내서 맞장구를 쳤다. 그 11년 후, 즉 1996년 2월 27일 한 시민단체가 ‘산분해간장에 유독성 물질 즉 3-MCPD 함유 시비’를 들고 나왔다.

위와 같은 일련의 사건은 장류업계에게는그 존폐를 염려할 정도로 심각하게 충격을 주었다. 그러지 않아도 궁색한 처지에 비명이라도 지를 지경이었다.

나는 이 사건들을 보면서 학자적 양심으로 도저히 방관할 수만은 없어서 관계 요로를 찾아다니며, 또는 글로서 산분해간장 존재의 긍정화에 온 힘을 다했다. 그 시대에는 소득수준은 산분해간장이 아니면 업계가 존립될 수도 없는 형편이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나의 태도가 오늘날에는 180도로 변했으니 거기에는 분명 이유가 있다. 1990년대 까지만해도 6000달러를 넘지 못했던 국민소득이 지금은 3만 달러를 초과한 것과도 관련이 있다. 지금 우리는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에 살고 있다. 산분해간장 대신 발효간장을 먹어도 가계지출에 아무런 지장을 주지 않을 정도의 형편이 되었다.

지금 법규상으로 ‘산분해간장’과 ‘혼합간장’이 있고, 후자는 산분해간장과 발효간장을 각자 적정 비율로 혼합한 것인데, 그 비율이 거의 ‘산분해간장’에 가까울 정도의 혼합비율이라 할지라도 법적으로는 산분해간장이라는 이름을 피해서 혼합간장이라는 이름으로 부를 수 있으니 이는 분명 소비자를 기만하는 일이 아닌가 싶다.

한 소비자단체의 조사에 의하면, 이러한 제품의 시장점유율은 70%정도이며, 소비자의 대다수는 이러한 제조공정을 제대로 모르고 사 먹는다고 한다. 산분해간장을 먹지 말자는 이유를 또 하나 들고 싶다.

위에서 언급한 3-MCPD라는 독성물질의 문제이다. 정부에서는 그 함유량의 상한치를 0.3ppm로 규정하고, 업계에서는 충분히 잘 지키고 있어서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그 미량이라도 없는 것보다는 못할 것이며, 혹시나, 만일 생산자의 실수, 감독자의 실수 등이 100% 없으란 보장을 누가 장담할 것인가를 생각하면 몇 푼 더 보태서 발효간장을 사 먹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3만 달러 시대이니 말이다.

정부에서도 개념의 현실화에 적극 앞장 서면서
소비자의 알권리 증진하고, 그 여파가 생산자를 위축시키지 않게
최고의 정책이 뒷받침돼야

그리고 정부에서도 위와 같은 개념의 현실화에 적극 앞장 서면서 소비자의 알권리를 증진하고, 그 여파가 생산자를 위축시키지 않게 최고의 정책이 뒷받침돼야 할 것이다.

최근의 소식에 의하면, 식약처가 소비자 알권리 차원에서 혼합간장의 배합비율을 상품의 앞면에 표시하도록 제도를 개선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런데 업계 일부에서는 소비자의 인식 향상으로 산분해 또는 혼합간장의 소비 위축이 있을 것을 염려하여 제도의 개선을 반대한다고 한다. 물론 당연히 있을 수 있는 일로 수긍은 간다. 하지만 주변의 장류문화권 국가들의 추이를 보자. 일본이나 중국에서는 산분해물에는 ‘간장’이라는 이름을 쓰지 못하게 한 지 오래다. 다만 일본에서는 ‘아미노산액’으로, 중국에서는 ‘복합조미액’으로 부를 수 있을 뿐이다.

이와 같은 주변국의 조류로 볼 때 시대적으로 거스를 수 없는 상황임에는 틀림이 없으니 새로운 각오로 임해야 되지 않겠나 싶기도 하다.

전통적으로 중국이나 한국 등 간장은 오래 삭혀서 깊은 감칠맛이 있어야 한다. 각 나라마다 간장의 분류나 표시에 대한 제도는 각각 달리 운영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동양의 식문화 전통성은 거의 동일하게 주장하고 있지만, 간장에 대한 표시제도는 각기 다르다.

일본과 중국 등은 소비자의 선택권을 우선하는 방향으로 제도가 변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는 발효 양조공정으로 생산해야만 ‘간장’이라고 부를 수 있다는 뜻이 된다.

우리나라의 간장에 대한 명칭의 분류와 정의 그리고 표시가 그동안 많이 미흡한 것으로 보인다. 각종 간장에 대한 명칭도 학계와 충분히 논의해서 정해야 할 일이라고 본다. 즉 일식간장, 양조간장, 한식간장 등 국적의 구별이 모호한 상황인데, 하루빨리 정리해서 거기에 맞는 이름을 되찾아주고 싶다.

발효로 이루어진 정형 간장을 우리 후손에게 제대로 알리고 물려주는 일이 선배인 우리들이 꼭 해야 할 일이다. 그래서 우리가 발효종주국으로서 긍지와 위상을 다시 한번 다지고 세계문화유산으로 우리의 우수한 장담그기 문화를 등록하기 위해 힘써야 하겠다.

졸수를 넘긴 장류 전문가로서 장류계의 무궁한 발전을 염원하는 나머지 두서는 없을지언정 이상과 같이 적어본다.

이한창 전 동덕여대 연구교수/식품기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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