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화 명예교수의 살며 생각하며 (83)

 

서서히 시들어 자기를 있게 한 몸체와 분리되는 과정
이 세상, 삶의 과정 보는 것 같아 교훈 얻어

사무실 화분에 심어놓은 호접란이 몇 달째 진한 분홍색으로 매일 출근하는 나를 반갑게 맞아준다. 그저 2주일에 한 번 물을 주고 특별히 관리할 필요가 없으니 크게 신경 쓸 일 없이 볼 때마다 눈으로 인사하며 소통한다. 매일 같은 모습에 같은 색깔이라 조금 지루할 만도 한데, 시간이 지나면서 자세히 보면 계속 변화가 있다.

꽃이 핀 순서대로 서서히 시들어 꽃잎이 떨어지고 위에 다시 핀다. 떨어진 꽃은 마르면서 제 모습을 잃기는 하지만, 결코 품위는 잃지 않는다. 꽃이 핀 순서대로 조금씩 생기를 잃다가, 어느 날 자기를 있게 한 몸체와 분리된다. 그 과정이 이 세상, 삶의 과정을 보는 것 같아 교훈을 얻는다. 결국, 나도 언젠가 왔던 곳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보여준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했던가. 꽃이 피면 10일을 가지 못한다고 했는데, 많은 꽃이 비슷하다. 아름다움을 뽐내고 향기가 비교하기 어렵게 매혹적인 장미도 10일이면 본래의 자태는 없어지고 색이 변하면서 조금은 추한 상태로 마무리한다.

아마도 낙화에서 가장 인기를 끄는 것은 벚꽃이 아닐까 한다. 활짝 피어 2~3일이면 미련 없이 몸체를 떠나 소담한 함박눈 같은 모습으로 원래 왔던 땅으로 돌아가면서도, 그 품위를 잃지 않는다. 필 때의 꽃잎 그 색깔과 그 모습을 유지한다. 꽃마다 특징이 있지만, 목련처럼 자기를 있게 한 몸체에 붙어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최후를 맞으면서 색깔이 검게 변하고 퇴색한 모습은 닮고 싶지 않다.

많은 식물이 꽃을 피우는 것은 자손을 잇기 위한 본능적 목적이며, 고혹적인 향과 아름다운 색깔을 가진 것은 벌과 나비를 초청, 수분하기 위함인데, 색과 냄새뿐만 아니라 맛있는 꿀까지 간직하고 있으니, 어찌 곤충이 마다하겠는가.

꽃을 피우는 가장 큰 목적은 씨받이이지만, 그런 목적에 아랑곳하지 않는 부류도 상당히 있다. 봄의 전령사, 개나리는 씨가 맺히는 것을 보지 못하였고, 조금 이따 피는 진달래와 철쭉도 후손을 위한 증명이 없는 것 같다. 후손을 퍼뜨리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인가 보다. 뿌리나 줄기로 번식할 수 있으니 씨 맺히는 작용이 퇴화하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식물학자에게 확인해 보고 싶다.

오늘도 호접란 몇 송이가 수명을 다하고 바닥에 떨어져 있다. 떨어진 꽃잎을 주워 화분에 다시 올려준다. 자기가 왔던 몸체에 조금 더 머물도록 배려해주는 것인데, 그 마음이 전달될는지.

우리 조상은 나를 낳아주고 길러주신 부모가 돌아가시면 3년 동안 시묘(묘를 지키는 것)살이를 했다고 하는데, 현대인이 생각하면 먼 석기시대 얘기로 들릴지 모르나, 그렇게 오래된 일이 아니다. 조선조까지 이어오던 우리 조상의 애틋한 마음의 표현 방법이었으니.

3년이란 시묘살이는 조금 과하다 하더라도, 지금의 장례 절차는 간소함을 넘어, 순간으로 해치우는 상황이 되었다. 보통 삼일장으로 가시는 분과 결별의 장을 마련하고, 대부분 화장하여 납골당에 모시면 모든 것이 끝이다. 겨우 기일에 한 번 찾아가 추억을 더듬으면 효자, 효녀라고 쳐야 한다.

우리 모두가 생을 받았으면 마무리해야 할 때가 올 터인데, 그 마무리가 깨끗했으면 하는 생각을 많이 하는 요즘이다. 그래서 연명치료를 거부한다는 서약을 하였고, 자손에게도 전달했으니, 그대로 지켜주기를 부탁하고 있다.

많은 동물의 마지막 정리는 식물과는 사뭇 다른 것을 본다. 인간은 어느 나이가 되면 성장을 멈추고 생식능력을 잃게 되면서 노화의 과정에 접어든다. 성장을 멈추는 나이, 20세가 넘으면 노화가 시작하여 그 과정이 계속되고, 더는 쓸모가 없는 때가 정리하는 순간이다.

이와 다르게 식물은 성장을 멈추는 때가 삶을 마무리하는 때이다. 살아있는 한 꽃을 피우고 새잎이 돋아나며 성장을 계속한다. 그래서 수천 년을 장수하는 나무가 있고, 이들 장수나무는 오늘도 성장을 멈추지 않는다. 성장하면서 매년 나이테로 삶을 기록하고 흔적을 남긴다. 이런 식물에 비하면 인간 삶의 길이는 짧지만, 일년생 식물에는 비할 바 아니다.

이제 사무실에 모셔놓은 호접란도 나와 이별할 때가 머지않았나 보다. 위에 몇 송이가 남았고, 그 상태도 그렇게 튼튼해 보이지 않으니. 식물도 나이 들면서 싱싱함을 잃는 것은 사람을 닮았나 보다. 그래도 아직 잎사귀가 싱싱하니 꽃이 없다고 버릴 수는 없는 애착이 남는다.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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